하드웨어 스타트업에게 크라우드 펀딩이란

하드웨어 스타트업 치고 크라우드 펀딩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은 곳이 있을까? 오늘날 크라우드 펀딩은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수순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온라인 상에도 크라우드 펀딩준비에 관한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다.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한 입장에서 겪은 좌충우돌의 가감없이 다룬 글은 많지 않다. 이 자리에서는 필자가 ‘이놈들연구소’에서 (전)사업개발팀장으로서 Sgnl’스타터 캠페인을 진행하고 최종 147만불을 달성(상위 0.03%)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까지의 시행착오와 배움을 몇 차례에 걸쳐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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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 펀딩이 하드웨어 스타트업에게 의미하는 것과 의미하지 않는 것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비해 어려운 것은, 통상 제품 출시 9~12개월 전에 공장 설비 세팅(툴링) 등에 목돈이 들어갈 일이 많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처럼 lean한 이터레이션으로 shoot-aim-shoot 방식으로 수정해 나갈 수도 없다. 이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획기적으로 쉬워지게 된 계기가 바로 킥스타터를 시작으로 한 소위 ‘크라우드 펀딩’의 등장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선판매(Pre-sales)를 통해 수요를 미리 파악하고,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미리 조달하여 첫 제품의 첫 batch를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 분류되는 한 ‘기업군’의 생애 주기 전체에 미친 영향이다. 2009년 창립이래 킥스타터에서 돈을 쓴 사람이 1,200만 명이고, 두 번 이상 지갑을 연 사람도 400만 명이나 된다. 나오지도 않은 제품을 지원한다는 말도 안되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한 회사의 disruptive한 모델이 한 기업군의 살고 죽는 사이클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서 이제는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린 크라우드 펀딩. 크라우드 펀딩을 하느냐 마느냐는 더이상 질문거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할 때 하더라도 창업자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크라우드 펀딩이 본인의 회사에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이 있어야 ‘언제’, ‘어떻게’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창업자가 크라우드 펀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경험을 통해 정리한 몇 가지 교훈이다.

1. 크라우드 펀딩은 최초 고객과 맺는 유의미한 관계다.

크라우드 펀딩 배커들은 출시하지도 않은 제품의 비전을 ‘믿고’ 사준 사람들이다. (이는 플랫폼 성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킥스타터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스타트업이 실험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대는 돈에 대해 받을 제품이 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제품 배송이 어느정도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알지만, 당신을 응원하는 의미에서 그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들은 창업자의 편이다. 이들은 창업자의 제품과 회사에 대해 그 누구보다 열렬한 팬이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제품 피드백을 줄것이고, 베타테스터를 자청할 것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신이 도움을 요청하면 팬심으로 당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 회사의 브랜드를 애정하는 1,000명, 10,000명의 골수팬을 확보한다는 게 의미하는게 뭘지 잘 생각해 보라. 핵심은 오버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에 따라 이들이 창업자의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될수도, 가장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다. 절대 이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사실 이건 전략이라기보다는 나를 믿어준 사람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에 더 가깝다.

2. 크라우드 펀딩은 ‘이야기 거리’다.

크라우드 펀딩은 사건이다. 이벤트다. 이벤트는 매체에서 다뤄진다. 목표액 달성. 목표액 200% 달성. 제품이 시장에 던져주는 ‘새로움’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초는 늘 주목 받게 마련이고, 미디어는 막 탄생한 창업자의 작은 성공을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좋은 시선에서 바라봐 줄 준비가 되어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는 펀딩 목표 100%, 200%, 500% 달성을 통해 ‘나 살아있소’, ‘나 이렇게 성공했소’, 하는 스토리텔링의 계기를 확보하게 된다. 브랜딩이고 버즈 빌딩이다. 하지만 경계하자. 진짜 브랜드는 제품의 질로부터 나오지, TV속에 비친 내 모습에서 나오지 않는다. 매체상의 buzz가 hype가 되고, hype가  scam이 되고 hoax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궁극적으로 집중해야하 하는 것은 소비자 만족도, 아마존 리뷰와 별점, NPS스코어이지, TV와 신문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다. 여기에 도취되면 안된다. 망한다.

3. 크라우드 펀딩은 제품의 Product-Market Fit 검증을 의미하지 않는다. 

크라우드 펀딩은 Market이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선판매 매출’이라는 말에는 창업자가 간과하기 쉬운 한 가지 중요한 함의가 들어있다. 펀딩을 해주는 사람들이 펀딩 의사결정을 내림에 있어 제품에 대한 사전 경험이나 리뷰 검토 없이 전적으로 제품에 대한 ‘기대’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 해 해당 제품이 풀고자 하는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다는 뜻이지, 실제 그 제품이 그 문제를 그 가격만큼 잘 해결해 주고 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크라우드 펀딩은 게임의 시작을 의미하지 끝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4. 크라우드 펀딩은 투자 유치가 아니다.

크라우드 펀딩은 선판매Pre-sales 매출일 뿐이다. 다시말해 제품으로 갚아야 할 빚이다.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용어에 속으면 안된다. 펀딩Funding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다수 경험 없는 사람들은 ‘투자’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해 여기에서의 펀딩(Crowd Funding)은 VC나 엔젤투자를 유치한다 했을 때 그런 펀딩(Equity Funding)가 아니다. 돈을 댄 사람이 그 회사의 지분을 취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크라우드 펀딩은 ‘선판매 매출(Pre-Sales Funding)’일 뿐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우리 회사가 킥스타터에서 1억원 투자를 유치했어요!” 라고 외친다면, 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1억원 어치의 제품을 선판매 했고, 너무 늦지 않게 제품으로 1억원만큼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5. 크라우드 펀딩으로 번 돈은 제품 ‘개발비’가 아니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제품 생산비 조달을 의미하지, 개발비 조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의 뜻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순수 생산비(툴링비, 양산비, 패키징비, 배송비) 등에 쓰일 돈이지, 프로토타이핑을 하고, 엔지니어, 디자이너 인건비 등에 쓰일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킥스타터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젝트 가운데 오직 4%만이 약속한 시간 내에 제품을 shipping하게 되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성공한 수많은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최종적으로 제 때 제품을 deliver하지 못하고 도산하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아직 내놓을 단계가 안된 제품(아직 개발중인 제품)을 내놓으면, 공장과의 협의가 틀어지고, 양산에 문제가 생기고, 제품 설계를 변경하고, 배송 방법이 바뀌고 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따르고, 생각치도 못했던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100%다. 따라서 충분히 준비를 갖추지 않은 채 섣불리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간 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준비가 되었다 함은, 창업자의 회사가 1) 제품 개발을 마쳐 최소 EP(Engineering Prototype)를 갖추고 있고, 2) EP가 고객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며, 3) 공장 등과 생산을 위한 협의 및 준비가 마무리되어 비교적 정확한 BOM(Bills Of Material), COGS(Cost of Good Sold), 고정비, 판매 마진 등을 알고 있어, 4) 크라우드 펀딩 종료시점으로부터 약속된 기간 내에 제품을 지연 없이 shipping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은 막연하게 ‘언젠간 해야지’ 하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점들을 미리 생각해 보면서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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