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로달러 시스템에서 비트코인 본위제로

원문: UNCOVERING THE HIDDEN COSTS OF THE PETRODOLLAR
저자: Alex Gladstein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미국의 달러 시스템은 석유와 독재자, 불평등, 그리고 군산 복합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비트코인이 어떻게 이를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논문에서 시작된 비트코인은 지금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으로 성장했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비트코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에너지 소모량, 탄소 발자국, 중앙 통제의 부재, 그리고 규제 불가능성 등, 비트코인의 부정적인 외부 요소에 초점을 두고 비판을 가해 왔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비트코인에 대해서와 동일한 수준의 엄격성을 가지고 달러 패권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세계 경제 체제의 부정적 외부 요소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드물다.

이런 현상은, 많은 비트코인 반대론자들이 비트코인을 단순히 비자(Visa) 류의 결제 플랫폼 쯤으로 여기며 비트코인의 성능과 비용을 “초당 거래 처리 속도(transactions per second)”를 근거로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부 기인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비자와 경쟁하는 핀테크 기업이 아니라, 새로운 글로벌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해 성장하고 있는 탈중앙화 자산이다. 세계 경제에서 한때 금이 가지던 지위, 오늘날 달러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물려받기 위해서 말이다.

전 세계가 달러화와 미 재무부 채권에 의존하고 있는 오늘날, 미국은 비길 데 없이 큰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 화폐 거래의 거의 90%가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고, 해외 외환 준비금도 60%가 달러이며, 전 세계 부채 중 거의 40%가 달러로 발행되었다. 미국의 경제 규모가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함에도 말이다. 달러가 이러한 특수한 지위를 누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가 군사 협정을 맺은 이래, 전 세계가 달러로 석유를 계산하고 미국의 부채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2020년의 팬데믹과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도, 미국의 엘리트 계층은 여전히 에너지와 금융 조달을 위해 화폐 재화와 계산 화폐(numéraire)를 발행할 수 있는 이 터무니없는 특권을 계속해서 누리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는 엄청난 수준의 경제 성장, 인구 증가, 민주주의 발전, 기술 진보, 삶의 질 향상을 이룩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체제에도 좀처럼 이야기되지 않는 많은 결함이 있으며,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가 이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4%에 불과한 시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통제하고 조작하는 기본 통화가 아니라, 열려 있고, 중립적이며, 예측 가능한 화폐가 기본 통화가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이 글은, 세계에 보다 공평하고 자유로우며 탈중앙화된 새로운 체제가 들어설 날을 꿈꾸면서,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 현 체제의 충격적인 모순을 파헤치고자 하는 글이다.

또한 이 글은 오일 달러가 탄생한 배경과 더불어, 미국이 달러를 세계 기축 통화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잔혹한 독재자들을 물밑으로 지원해 왔는지, 어떻게 국가의 안보와 산업 기반을 약화시켰는지, 어떻게 국외 갈등을 일으키면서까지 화석 연료 산업을 비호했던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지난 수십 년 동안에는 유효했지만, 오늘날 세계의 금융 구조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다극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본다면 비트콘인 본위제(Bitcoin standard)도 꿈만 같은 소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1. 오일 달러의 탄생

의심의 여지 없이 19세기의 가장 강대한 경제 패권국이었던 대영제국은 1차 세계 대전의 종식과 함께 그 힘을 서서히 잃어갔다. 그러는 사이 미국이 전쟁으로 분열된 유럽보다 훨씬 강대하고 지구에서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한 국가로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발발과 함께, 달러는 파운드를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화폐가 되었다.

각국의 정부는 여전히 금을 세계 기축 통화로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미국과 영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보다 더 “유연한” 시스템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종식을 몇 개월 앞두고, 44개국의 정상이 뉴 햄프셔의 브레튼 우즈에 있는 한 호텔에 모여 새로운 금융 기반을 채택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여러 국가에서 관리하는 글로벌 계산 화폐, 방코르(bancor)의 채택을 제안했으나, 미국은 달러를 금 1온스에 $35로 고정시켜 국제 화폐의 중심에 두고 싶어했다. 그때까지도 국제 무역 적자는 모두 금으로 정산되고 있었으므로, 미국은 자국의 세계 금 공급량에 대한 지배력과 국제 수지 상에서의 우월한 지위를 지렛대로 활용해 자국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이어진 수십 년 동안 각국의 화폐를 가변적인 달러 액수와 연동시키는 브레튼 우즈 체제가 지속되었다. 미국이 이 체제 전체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금을 위탁 보관 및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 이 체제는 대체로 잘 작동하였다. 금으로 지급이 약속된 달러는 국제 결제에서 가장 유력한 교환 매개물이 되었으며,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채권국이자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복지와 군사 지출을 늘리는 노선을 채택한다. 미국의 채무는 존슨 대통령의 사회 정책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급증한다. 2차 세계 대전이나 한국 전쟁과는 달리,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처음으로 빚더미를 떠안아가며 참전한 첫 전쟁이었다.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금융의 지배(Ascent of Money)>에서 이렇게 말한다. “1960년대 미국의 공공 부문 적자는 오늘날과 비교해 본다면 무시해도 될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중세 왕정이 화폐 주조를 독점해 화폐 가치를 떨어트렸듯이 미국도 기축 통화국으로서의 지위를 남용하며 달러를 찍어내 해외 채권자들로부터 주조차익(seignorage)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프랑스의 불평을 듣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뤼프(Jacques Rueff)는 이를 두고 “서방의 화폐 죄악(monetary sin of the West)”이라 말했고, 프랑스 정부는 “터무니없는 특권”이라고 지적했다. 1967년, 불쌍한 영국은 재정 정책을 통해 파운드를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었고, 프랑스는 이와 유사한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이 두려워 달러 평가절하가 이루어지기 전에 금을 돌려받고자 했다.

1971년, 미국의 부채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있었다. 고작 $110억 상당의 금이 $240억 상당의 달러화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해 8월, 프랑스의 폼피두 대통령은 연방 준비 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금을 징수하기 위해 뉴욕으로 전함을 파견했으며, 영국도 포트 녹스에 보관되어 있던 30억 달러 상당의 금을 되찾아 가겠다며 미국에 통보했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TV 생중계를 통해, 임금 및 물가 동결, 그리고 수입 과징금 등의 정책이 포함된 경제 회생 계획의 일환으로, 금태환 금지를 선언한다. 닉슨은 이 금태환 금지를 일시적인 조치라며 선을 그었지만, 그럼에도 달러화의 가치는 10% 이상 하락했고 이로써 브레튼 우즈 체제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전 세계가 이 “닉슨 쇼크”에 의해 치명적인 금융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닉슨은 미국이 국제 사회에 불러일으킨 파장에 대해 “리라화가 어떻게 될지따위는 내 알 바 아니다”라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부채(Debt)>에서 이렇게 말한다. “닉슨이 달러에 변동 환율을 적용하고자 했던 것은, 미국이 인도차이나 전역의 도시와 마을에 떨어트린 4백만 톤의 폭발물과 소이탄의 비용을 갚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채무 위기는 폭탄값, 혹은 더 구체적으로는 이 폭탄을 실어나를 거대한 군사 인프라 비용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미국의 금 보유고에 엄청난 부담을 안긴 것도 이것이었다.”

이로써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는 순전한 명목 화폐 제도 아래에 놓이게 됐다. 전 세계 각국의 중앙 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는 그 가치 기준을 잃었고, 미국의 패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금융 생태계 다원화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지정학적 사건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73년 OPEC의 아랍 산유국들은 세계 유가를 네 배로 인상하고, 제4차 중동 전쟁 중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에 대해 금수 조치를 내렸다. 불과 몇 년만에, 배럴당 유가는 2달러에서 거의 12달러로 껑충 뛰었다. 두 자리 숫자의 인플레이션율과 달러 신뢰도 급락이라는 난관에 직면한 닉슨과, 그의 국무부 장관이자 국가 안보 보좌관이었던 핸리 키신저는, 금 본위제 종식 이후로도 군비-민생 양립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 아이디어로 세계의 운명을 영영 바꿔놓고 만다.

1974년, 이들은 “늘어만 가는 미국의 적자를 오일 달러로 매꿀 수 있도록 적국을 설득하기 위해” 신임 재무부 장관 윌리엄 사이먼을 사우디 아라비아로 보낸다. 오일 달러란 쉽게 말해 석유를 살 때 석유 수출국에게 지불되는 미국의 달러화이다. 블룸버그의 기사에 따르면 그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는 “충격적으로 단순”하다.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석유를 사고, 군사 원조와 군사 장비를 제공하는 대신,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들이 가진 석유 달러 수익을 미국의 국채에 재투자하고 미국의 지출을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달러가 중동의 석유가 공식적적으로 운명 공동체가 된 순간이다.

1974년 6월 8일 워싱턴에서 키신저와 파드 왕세자는,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에 대한 투자를,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한 군사 지원을 약속한다는 협약에 서명한다. 그로부터 며칠 후, 협약의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닉슨 대통령이 제다로 향한다. 이후에 기밀 해제된 문서들에 따르면, 당시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사우디 아라비아가 “정기 경매 바깥에서, 특혜 세율로” 미국의 재무부 채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1975년 초 사우디 아라비아는 25억 달러 상당의 미국 국채를 사들이는데, 이는 훗날 수조 달러에 이르게 되는 오일 달러 투자 행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수십 년 후, 당시 재무부 장관 사이먼의 보좌관이었던 게리 파스키(Gerry Parsky)는 이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밀약은 수년 전 와해되어야 했”으며, “재무부가 해당 체제를 놀라울 정도로 오래 유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거래가 미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므로 자신이 한 일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1975년이 되어서는 다른 OPEC 국가들도 사우디 아라비아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누구든 전 세계 석유 비축량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에게서 석유를 사고자 할 때는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인플레이션이 끊이질 않던,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이 팽배해 있던 당시에도 달러화에 대한 수요는 늘어갔다. 석유를 필요로 했던 개발도상국들은 석유를 사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물건을 수출하거나, 외화 거래소에서 달러를 사들여야 했는데, 이는 달러의 글로벌 네트워크 효과를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1974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석유의 20%가 영국의 파운드로 거래되었으나, 이 숫자는 1976년에 이르러 6%까지 떨어진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미국 군사 장비 수입액은 1975년에 이르러 3억 달러에서 50억 달러 수준으로 증가한다. 달러로 판매가 가능해짐에 따라 프리미엄이 붙기 시작한 유가는 1985년까지 고공행진을 거듭한다.

II. 오일 달러의 영향력

정치경제학자 데이비드 스피로(David Spiro)는 오일 달러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OPEC 달러 이윤이 미국의 국채로 “재활용”되어 “미국 정부의 방만한 정책 예산 운용과 시민의 방만한 소비”를 떠받치는 자금이 되어줬다고 이야기한다. 오일 달러 재활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금리 하락 현상으로 이어졌으며, 미국이 국채를 더 싼 가격에 발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체제는 경제적 토대가 아닌,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담합이라는 정치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된 것이다. 1977년 앨런 그린스펀은 포드 정부 시절 경제 자문 위원회(Council of Economic Advisers) 위원장으로 일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말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비-시장적’인 의사 결정자다.”

그레이버는 오일 달러의 재활용을 두고, 미 국채가 어떻게 금을 제치고 세계 기축 통화, 그리고 궁극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지적한다. 그가 뜻밖이라고 여기는 것은, “저금리 결제와 인플레이션이 결합된 결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채권의 가치가 떨어져… 경제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주조세(seigniorage)’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1974년 처음 등장한 오일 달러 체제는 다음을 포함하는 여러 측면에서 세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 

  •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및 걸프 지역의 독재정 사이의 공고한 연합이 탄생했다. (연방 준비 은행의 통제권 바깥에서 만들어진) 오일 달러가 런던과 북미의 은행을 휩쓴 후, 미 국채로 재활용되거나 신흥 시장에 대출되었고, “유로달러”의 가파른 증가가 세계 경제에 그늘을 드리웠다.
  • 시스템의 레버리지를 늘리는 가운데, 미국 경제의 금융화가 이루어졌고, 인위적으로 형성된 달러 강세에 수출 경쟁력은 낮아지고 중산층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중점 산업이 제조업에서 금융, 기술, 국방, 서비스업으로 이동했다.
  • 세계 시장이 달러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소련이 느끼는 스트레스 압박의 수위가 높아졌다. 오일 달러 시스템 하에서 미국은 기름을 사기 위해 그저 돈을 “찍어내면” 됐지만, 소련은 땅을 파서 기름을 캐내야 했기 때문이다.
  • 신흥 시장 경제에 고통스러운 문제를 안겨줬다. 갚기 어려운 달러 표기 채무에 허덕이던 신흥 국가들은 국내 투자보다 달러 축적에 우선 순위를 둬야 했는데, 여기에서 발생한 소득 손실에 의해 멕시코, 동아시아,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들이 채무 위기를 겪었다.
  • 원자력 발전과 지역 에너지 독립성이 쇠퇴하고, 석유 산업과 화석 연료 산업의 꾸준한 성장이 이루어졌다.
  • 미국의 군사-금융 패권이 계속되었으며, 미국이 금융 전쟁과 사회 정책을 지속하면서 발생한 거대한 적자는 다른 국가에 의해 일부 충당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대체로 신화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오일 달러 이론 비판자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달러의 강세가 단순히 경쟁 상대가 없어서 발생한 결과라 말한다. 경제 정책 연구소(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의 딘 베이커(Dean Baker)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석유의 가격이 달러로 매겨진 것도, 거의 모든 석유가 달러로 거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사실만으로는 국제 화폐로서 미국의 경제적 안녕을 지키고 있는 달러의 현재 위상을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또한, 워렌 모슬러(Warren Mosler)나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Kelton)과 같은 현대의 화폐 이론가들은, 미국이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가지는 역량에 대해 오일 달러 체제가 가지는 비중을 “별로 중요치 않다”거나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석유가 어떤 화폐로 거래되든 간에 각국은 통화 스와프 후 석유를 구입하면 된다면서 말이다. 비판자들은 달러가 1973년 이전에도 이미 세계 기축 통화였고, 상품의 가격이 달러로 책정되는 것은 “단순한 관습”에 불과한 것이며, “석유 시장의 계산 단위가 유로화가 됐든, 엔화가 됐든, 심지어는 한 가마의 밀이 됐든 별다른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이들은 석유 거래에서 사용되는 달러는 다른  수요처들에 비교했을 때 “사소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석유 수출 가격을 달러로 매기기로하고, 그 이윤을 미국의 부채에 투자하기로 한 사우디 아라비아와 OPEC의 결정은 엄격한 시장주의적 결정도, 단순한 우연도 아니었다. 이는 미국의 보호와 무기를 취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수많은 네트워크 효과를 파생시켜 세계 기축 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든 지극히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한 국가가 자국의 화폐를 달러로 바꿔 석유를 사야 한다면, 해당 국가와 미국 사이의 무역 관계가 강화된다. 이렇게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을 에너지 시장 바깥으로까지 넓혀 갔다. 그레이버는 자신의 책 <부채>에서, 석유가 달러로 거래됨으로써 미국이 주조세를 취하였는지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이것과 별개로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것을 상징적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여기며, 이것을 바꾸려는 시도에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III. 미국의 대외 정책과 오일 달러

2000년 10월,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는 이제 달러가 아닌 유로로 석유를 판매하겠다고 선언하며 오일 달러 체제에 도전했다. 2003년 2월까지, 후세인은 33억 배럴의 석유를 팔아 260억 유로를 벌어들였다. 후세인이 프랑스와 독일 무역 파트너와 함께 “오일 유로”를 탄생시킨 것이다. 만약 오일 유로의 영향력이 계속해서 커졌었더라면, 유로 강세가 달러의 터무니없는 특권을 약화시키고, 다른 많은 화폐와의 경쟁에서 유로 시장이 크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달 후, 미국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한다. 그해 6월, 이라크는 석유를 다시 달러로 팔기 시작한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사후 분석은 대체로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 여부, 인권 탄압 및 테러 집단 지원 여부에 그 초점이 쏠려 있을 뿐, 미국이 오일 달러를 지키기 위해 이 전쟁에 나섰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유로를 달러에 대한 현실적인 도전자로 보았다. 돌이켜 보건대, 사담 후세인 축출이 결과적으로 오일 달러 체제가 그 지배력을 이후로도 오랜 시간동안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은, 미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미스테리에 쌓인 이 전쟁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기자 로버트 드레이퍼(Robert Draper)가 자신의 새 책 <전쟁을 일으키는 방법: 부시 행정부는 어떻게 이라크에 미국을 세웠나(To Start a War: How The Bush Adinistration Took America Into Iraq)>을 소개하기 위해 에즈라 클라인(Ezra Klein)의 방송에 출연했다. 이들은 지난 십 년간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근거를 파해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라크 전쟁이  “전쟁의 이유를 찾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이 이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오늘날까지 미국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는지에 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답은 나와 있지 않으며, 미국이 공식적으로 내세운 침공 근거는 완전히 조작된 것으로 증명되었다.

전 재무부 장관 폴 오닐(Paul O’Neill)에 따르면, 2001년 2월에 이미 부시 행정부는 내부적으로 이라크 침공 계획을 논의 중이었으며, 여기에는 “‘왜’라는 질문은 빠진” 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빨리'”만 논의되었다고 한다. 청사진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몇 시간만에, 국방부 장관의 보좌관인 폴 울포위츠(Paul Wolfowitz)는 사담 후세인과 테러 집단 사이의 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명령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부시 행정부는 총력전을 선전했으며, 2003년 3월에 이르러서는 UN에서의 홍보 캠페인과 뉴스 텔레비전에서 활약한 내무부 장관 콜린 파월(Collin Powell)의 도움으로 전국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국회 상하 양원 모두가 사담 후세인 제거를 지지했으며, 지지한 의원 중에는 힐러리, 존 케리, 해리 리드, 조 바이든도 있었다. “폭스 뉴스”로 시작해 뉴욕 타임즈까지, 대부분의 언론사들도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고, 침공 직전까지 몇 주에 걸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민의 72%가 침공 지지를 표현했다. 대중의 지지 근거는 분명했다. 사담 후세인은 위험한 인물로, 그가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되는 대량 살상 무기(WMD)가 알 카에다에게로 넘어갈 수도 있니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부통령 딕 체니는 “후세인이 WMD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전쟁은 인도주의적 전쟁이라고 홍보되며 “이라크 해방 작전”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건대, 미국은 결코 인권 수호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이 아니었다. 알 카에다와 9/11 테러 사이에는 연결점이 없었으며, 딕 체니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WMD는 이라크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이 시아파라는 것, 미국 점령 기간 동안 이라크의 정치 구조가 오히려 이란에게로 기울어졌다는 것, 그리고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던 것이 다름 아닌 이란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따져본다면, 이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전쟁을 일으킨 공식 명분이 이렇게 허술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석유가 이 전쟁의 진짜 이유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아프리카 분할(the Scramble for Africa)과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의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Treaty), 모사데크(Mossadegh)와 루뭄바(Lumumba)의 축출, 그리고 1차 걸프전을 포함한, 지난 150년간 이어져오면서 지금의 세계를 만든 숱한 전쟁, 침공, 점령 행위 중 대부분이 천연 자원을 두고 벌어진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조지 W 부시, 콜린 파월,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이라크 연합 과도 행정처의 최고 행정관 폴 브레머, 영국 외무상 잭 스트로우는 모두 이 전쟁이 석유 때문에 벌어졌다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전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회고록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편한 일이라는 데 슬픔을 느낀다. 이라크 전쟁은 대체로 석유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다”라고 말한 바 있으며, 언론을 통해서도 세계 석유 공급량을 지키기 위해서 사담 후세인의 제거는 “필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라크 내 미국의 작전을 책임졌던 존 아비자이드 장군도 이라크전은 “당연히 석유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었으며, 우린 이를 부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전 국방부 장관 척 헤이글 역시 2007년 “우리가 석유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석유 때문에 싸운 것이 맞다”고 인정했다.

당시에도 미국의 석유 소비는 중동에만 의존하고 있지는 않았다. 2003년, 미국은 대부분의 석유를 국내 생산된 석유, 혹은 캐나다, 멕시코, 베네주엘라에서 수급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석유 수급을 “통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빈약해 보인다. 또한 무력 전쟁이 이라크 석유 산업 인프라의 파괴로 이어지리란 것,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라크의 석유 산업이 종전의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리란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전쟁은, 석유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일 달러 체제를 지키기 위해 벌어진 전쟁일지도 모른다.

2003년 5월, 이라크가 석유를 다시 달러로 팔기 시작하기 1주일 전, 하워드 파인만은 뉴스위크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유럽인들 사이에서 UN이 있지도 않은 WMD의 수색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진짜 논쟁은 “WMD에 관한 것이 전혀 아니라, 누가 이라크산 석유를 사고 팔게 될지, 그리고 이 거래에 무슨 화폐가 사용될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레이버는 이렇게 문제를 제기한다. “달러 사용을 거부하기로 한 후세인이 결정이, 미국의 후세인 축출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까? 말하기 어렵다. ‘적국의 화폐’를 사용하지 않기로 한 그의 결정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다른 많은 적대적 제스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후세인의 결정 때문에 이라크 전쟁이 터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으므로, 이후로 각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후세인과 같은 식의 결정을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수혜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제국의 모든 협상 이면에는 궁극적으로 공포가 작동한다.”

돌이켜 보건대, 2000년대 초는 미국이 유로화의 도전을 견제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취하기 적합한 시대였다. 오일 달러의 수호가 이라크 침공의 주된 목적이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다른 국가들도 사담 후세인의 말로를 목격하고는 자신들만의 “석유” 화폐 제도를 밀어붙이는 데 미국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석유는 어떻게 됐을까? 이라크의 석유 생산량은 2001년과 2019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해, 현재 하루 5백만 배럴의 석유가 생산되고 있다. 금융계는 지난 몇 년간 상당한 다원화가 진행됐지만,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원유 중 99%가 아직도 달러로만 거래되고 있다.

IV. 독재자, 불평등, 그리고 화석 연료

이라크 전쟁 외에도, 오일 달러는 여러 핵심 쟁점과 확실한 부정적 외부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우디 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그 중 하나이다. 9/11 사건을 일으킨 19명의 테러리스트 중 15명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이었음에도, 미국 정부는 사우디 정권의 9/11 테러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완강히 거부하고, 되려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애꿎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고 폭격했다. 잔인한 사우드 왕가가 아직도 권력을 움켜 쥐고 있는 여러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일 달러이다.

2002년, 주 사우디 미국 대사를 역임했던 채스 프리먼이 의회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역사적으로 벌인 큰 일 중 하나는,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석유의 가격을 달러로 매기기를 고집했던 일이다. 그리하여 미국은 재무부에서 찍어진 돈을 가지고 석유를 살 수 있게 됐는데, 이는 다른 그 어떤 국가도 누리지 못하는 엄청난 특혜다.” 2007년,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 사법부가 석유 가격 담합 금지법을 근거로 OPEC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NOPEC”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다면 오일 달러 체제를 포기할 수 있다고 미국에 경고한다. 이 법안은 결국 제정되지 않는다.

2016년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만약 미국의 법정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9/11 사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미국에서 통과된다면, 왕국이 보유 중인 수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 자산을 처분할 것이란 입장을 오바마 행정부와 일부 국회 의원에게 전했다”고 한다.

2020년, 당시 법무 장관이었던 윌리엄 바(William Barr)는 “국가 안보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9/11 공격과 연루된 한 사우디의 외교관의 이름이 공공 영역에서 언급되는 걸 막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컬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터졌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의 배후로 추정됐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에 대한 그 어떠한 대응도 추진하지 않았다. NBC 뉴스에서 트럼프는 “나는 ‘저들과 사업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다니는 멍청이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정보 기관으로부터 암살 사건의 배후에 왕세자가 있다는 증거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익에 크게 반하는 일이라며 왕세자를 향한 직접적인 대응을 거부했다.

이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예멘에 피로 물든 전쟁을 일으키고, 여성 정치범을 고문하고, 카슈끄지를 암살하고도 어떻게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정권을 보호 받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여러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2015년과 2019년 사이, 불과 여섯 개의 걸프 지역 국가에 판매된 무기의 양이 전 세계 무기 판매량의 5분의 1을 넘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 그리고 카타르가 무기 수입량 세계 1위, 8위, 10위를 각각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이 수출한 무기 중 4분의 1은 모두 사우디 아라비아가 구입한 것이며, 2010년과 2014년 사이에만 7.4% 증가했다.” 1974년에 결성된 석유 동맹은 갖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2021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살펴본다면, 오일 달러로부터 큰 혜택을 입은 특정 집단도 있지만 일반적인 미국 중산층에게 오일 달러는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달러 독주 체제의 이득은 주로 금융 기관과 대기업에 집중됐으며, 그 비용은 대체로 노동자들이 부담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달러 패권의 지속은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기업과 자산 보유자들은 달러 독주 체제의 저금리 환경에서 큰 이득을 보았다. <달러 체제의 계급 정치(The Class Politics Of The Dollar System)>에서 페이긴(Feygin)과 로이스더(Leusder)가 말하듯, “달러 패권은 미국의 무역 적자를 증가시키고, 국가 경제가 생산성 증가보다는 임대료에 점점 더 의존하도록 만든다. 이는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의 하락, 교육, 의료 등의 서비스 원가와 주택 임대료 상승의 원인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오일 달러 체제가 달러에 대한 국제적 수요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사이, 미국의 제조업 기반은 점점 약화되어 경쟁력을 잃고 해외 수주 물량을 잃었다. 어떤 화폐의 강세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 적자가 발생하게 되고, 결국엔 수출품을 팔 수밖에 없도록 가치 하락이 일어난다. 하지만 투자가 린 알덴(Lyn Alden)이 <미국 세계 화폐 보유고 시스템의 몰락(The Fraying Of The US Global Currency Reserve System)>에서 지적하듯, 미국에서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적자를 계속해서 매꿔줬기 때문이다. 1960년,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의 이름을 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는, 세계 준비 통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계속 점점 더 큰 적자를 발생시켜 글로벌 유동성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달러에 대한 신뢰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 상황을 가리킨다.

미국의 금융 산업은 점점 그 규모가 커져 현재는 미국 전체 GDP의 20%를 차지하고 있다(1947년에는 10%였다). 이러한 금융화는 자산을 보유한 엘리트 계급의 부는 늘려줬지만, 임금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의 삶은 망쳐놓았다. 미국의 포퓰리즘과 극단적 불평등은 여기에서 촉발된 것이다. 미국의 평균적인 부의 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중산층의 부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점에서, 알덴을 비롯한 다른 거시 경제학자들은 달러 패권이, 실물 자산을 잔뜩 쌓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달러를 빌릴 수 있는, 그리고 핵심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장악력을 굳혀가고 있는 중국과 같은 국가와의 경쟁에서 미국을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그로멘의 주장에 동의한다.

또한 오일 달러는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 로이터에 따르면, “만약 달러로 거래되는 석유의 사용량이 줄어든다면, 1970년대 금 본위제 폐지 이후 세계 주요 산유국에 의해 재활용되고 투자되던 거대한 오일 달러 풀이 말라버릴 수도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재생 에너지로의 세계적 전환 추세가 화석 연료 수요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오일 달러 체제 자체는 물론 엄청난 재정 적자에도 아무렇지 않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던 미국의 능력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석유 이권 국가들은 지난 수십 년간 원자력 발전 기술과 재생 에너지의 개발에 대해 공격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군대는 세계에서 석유 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으로 남아 있다.

세계 기축 통화가 석유 판매에 의존하고 있는 한, 세계는 엄청난 탄소 배출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웬만한 중형 국가와 맞먹는 만큼의 탄소를 배출하는 미군은 세계 곳곳에 주둔 중인 채 오일 달러 체제를 보호하고 있으며, 달러를 수호할 필요가 커질수록 그 규모 또한 키워가면서 여러 대륙에서 유가를 급등시키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검은 금(black gold)에 의해 지탱되는 오일 달러 체제는 결코 녹색이 될 수 없다.

V. 비트코인과 다극화된 세계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오일 달러 체제 유지는 항상 최우선 과제였다. 하지만 오일 달러 체제는 명백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미국인들이 이 체제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누려왔지만,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루크 그로멘은 오일 달러 체제를 미국이 갖은 협박과 폭력을 수단으로 석유 가격 결정권을 쥐고 흔들고 있는 “기업 도시(company town)”에 빗댄다. 그에 의하면, 소비에트 연방의 몰락 이후 미국은 기존의 체제를 재구성해 또다른 형태의 브레튼 우즈 체제를 채택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미국의 독주가 가능한 체제를 채택했다.  또한 그로멘은, 미국은 오일 유로 등의 훼방으로부터 체제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NAFTA를 체결하고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도움으로써 오일 달러 체제의 생명을 연장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미국이 계속해서 제조업 상품과 국채를 해외에 수출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들여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로멘은 2001년 당시 600억 달러 정도 규모였던 중국의 보유 국채가 그로부터 십년 후 1.3조 달러로 불어난 사실을 지적한다. 2002년과 2014년 사이, 미국의 최대 수출품은 국채였으며 총 발행 채권 중 53%를, 미국의 국채를 새로운 형태의 금으로 여기고 사용했던 외국의 중앙 은행들이 사들였다. 하지만 그 후, 중국 등 여러 국가의 정부들은 이 새로운 금이 점점 그 가치를 잃게 될 것이라 예상하며 미국의 국채를 처분하고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기 시작한다. 미국이 지금 같이 높은 GDP 대비 부채 비율(1970년대 35%에서 현재는 100% 이상)을 유지하면서 오일 달러 체제를 고수한다면, 유가는 결국 천정부지로 치솟을 거란 사실을 이들이 깨달았다는 것이 그로멘의 분석이다. 2000년대 초 유럽의 오일 달러 견제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 화폐로 석유를 거래하는 것을 막아온 미국의 능력은 점차 약화되어 갔다.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유로, 위안, 루블과 같은 화폐로 석유 거래를 시작하고 있다. 점점 기반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체제에 계속 의존하고 있을 수는 없으며, 앞으로도 미국 정부는 달러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 제제 시스템은 상대국을 SWIFT 결제망이나 세계 은행(World Bank), IMF의 지원으로부터 배제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강력하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러시아를 향해 미국의 은행을 무기처럼 휘두른 조 바이든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얼마든지 적국에 대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는데, 이 전략은 오바마 시절부터 꾸준히 갈고 닦아, 트럼프 시절에 대대적으로 확장된 전략이다.”

이번 달, 바이든 대통령은 노드 스트림 2 가스관 프로젝트(Nord Stream 2 Pipeline project)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성사된다면, 러시아와 유럽이 가스관으로 연결되어 세계 석유 중 5%가 유로로 거래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로스네프트(Rosneft)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리라 예상되는 프로젝트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 프로젝트를 “무효화”시키길 원한다. 또한 관계자들 역시 달러 패권 유지는 여전히 현 정권의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서 “달러 패권으로 발생하는 자금 비용 우위가 충격을 흡수하고, 엄청난 지정학적 레버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국가적 관심사”임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오일 달러 체제가 탄생 50년이 지난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국에게 여전히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가 순전히 시장적 이유로 달러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금융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세계적인 탈-달러 추세를 가속시키고 있다. 예컨대, 작년 기준 중국과 러시아의 전체 거래 중 달러로 이루어진 거래의 비중이 7년 전 98%에서 33%로 떨어졌다. 중국은 위안화로 가격이 책정된 석유의 거래량을 늘려가고 있고,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 공산당이 추진하고 있는 “DC/EP”, 혹은 디지털 위안화 프로젝트가 전 세계 위안화 사용량을 늘리기 위한 술책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전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위원장이었던 장 클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는 “유럽은 총 에너지 수입 어음 중 80%(매년 3000억 유로 상당)를 미국의 달러로 지불하고 있지만, 그 중 실제로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에너지는 2%에 불과하다. 이것은 불합리한 일”이라 이야기한 바 있다. 달러 우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현재의 추세를 본다면 다른 주요 화폐들도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폐 다극화라는 요인 외에도 IMF가 달러, 유로, 파운드, 엔, 위안화를 기반으로 창안한 “특별 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도 오일 달러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케인즈, 그리고 그가 브레튼 우즈에서 제안했던 방코르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SDR은, 지난 몇 년 동안 상당한 인기를 끌어 이미 2000억 개 이상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최대 6500억 개가 더 발행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 중에서 비선출 국제 조직이 화폐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국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는 금 본위제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자크 뤼프가 1960년에 이미 말한 바, “민주주의에서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플레이션을 지향하는데, 금 본위제는 그 유일한 장애물이다.” 좌익 역사학자 마이클 허드슨(Michael Hudson)은 1970년, 우익 학자 허먼 칸(Herman Khan)과 손을 잡고 미국 정부에게 금 본위제로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미국 재무부를 대상으로 한 발표회에서 그와 나는, ‘금은 국제 수지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평화로운 금속이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국제 수지 적자를 금으로 지불해야 한다면, 그 어떤 국가도 전쟁을 벌이는 데서 발생하는 국제 수지 상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정부는 이렇게 대응했다. ‘바로 그 이유에서 우리는 금 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을 벌일 역량을 갖추길 원하며, 중앙 은행 준비금 보유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 미국의 달러화가 되길 원한다.'” 금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듯 제약 사항이 너무 많다.

2020년 제도 경제학 저널(Journal of Institutional Economics)에 실린 한 연구 논문은 미래의 세계 화폐 제도와 관련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 네 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달러 패권이 지속될 것이라는 시나리오, 둘 째는 화폐 블록간의 경쟁이 일어날 것이란 시나리오(EU와 중국이 미국을 견제) , 셋 째는 국제 통화 연합이 등장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국가가 아닌 BIS나 SDR가 국제 위계 질서 상 최상위를 차지), 넷 째는 세계 각국이 점차 단절되어 국제 통화 무정부주의가 나타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연구 논문에는 다섯 번째 시나리오가 빠져있다. 디지털 화폐가 세계 기축 자산으로 활용되는 비트코인 본위제의 등장이 바로 그 다섯 번째 시나리오다.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탄생한 비트코인은, 2009년 첫 등장 이후 그 가치가 0.01달러에서 50,000달러까지 치솟았으며, 전 세계의 주요 도시 지역에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써, 일부 지역에서는 교환 매개물로써 사용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테마섹 등의 국부 펀드나 테슬라와 같은 포춘 선정 500대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산으로 비트코인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금과 같이 중립적이며 탈중앙화되어 있지만,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고,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송수신이 가능하며, 검증이 간편하고, 절대적으로 희소하고, 중앙화에 면역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금과는 다른, 최고의 가치 저장 수단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넷만 된다면 모든 개인, 혹은 기관은 원하는 만큼의 비트코인을 송수신하거나 보관할 수 있으며, 그 어떤 파벌이나 국가도 그 가치를 저하시킬 수 없다. 비트코인은 누군가의 말마따나 적국의 화폐가 되기도 할 것이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면 그것이 적대적 집단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공평하게 비트코인의 이점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명목 화폐 대비 비트코인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점점 더 많은 기업과 개인이 비트코인을 사 모으기 시작할 것이다. 정부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기축 통화와 함께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소량 추가하는 정도겠지만, 결국에는 정부도 비트코인을 모으기 위해 매수, 채굴, 세금 징수, 몰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세계 기축 통화가 정점을 찍은 시대에 탄생한 비트코인은, 더 많은 가능성과 더 많은 제약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기축 통화 모델의 도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터넷만 된다면 누구든 자신의 급여나 저축한 돈을 보호할 수 있을 테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허공에서 돈을 찍어내는 일도, 끝없이 전쟁을 일이키는 일도, 시민의 의사에 반하여 대규모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사이의 이해 관계가 더 일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이 지금까지와 같은 엄청난 규모의 사회 정책 예산과 군비 지출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세계의 달러 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사람들이 달러보다 유로, 위안, 혹은 다른 국가의 채권을 더 선호하게 된다면, 미국은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닉슨과 키신저는, 석유 가격에 연동된 달러에 대한 세계적 수요를 통해 미국이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오일 달러를 설계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달러를 비트코인 가격에 연동하면 달러에 대한 세계적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까?

어떤 화폐가 기축 통화가 되든, 해당 국가의 비트코인 포지션과 경제력을 근거로 가격이 책정된 명목 화폐와 국가 채무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새로 떠오르고 있는 비트코인 산업에서, 미국은 이미 인프라, 소프트웨어 개발, 보유 수량, 그리고 (현재 추세 상) 채굴 등 여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국은, 자유, 기회의 평등, 표현의 자유, 사유 재산, 개방형 자본 시장 등, 비트코인의 정신과 공명하며 비트코인에 의해 더 강화될 수 있는 다양한 가치와 제도 위에 세워진 국가이다. 만약 비트코인이 세계 기축 통화가 된다면, 미국은 이러한 변혁의 과정에서 가장 큰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는 곧, 미국이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중동의 독재자들과 비밀 파벌에 의존하거나 다른 국가를 겁박, 침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화석 연료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 및 재생 에너지 기술을 반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일 달러 체제와는 반대로, 비트코인은 재생 에너지로의 세계적 전환 추세를 가속시킬 것이다. 모든 채굴업자는 전기료를 줄이고자 하는데, 추세 상으로 재생 에너지는 앞으로 그 값이  점점 싸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본위제 하에서 모든 참가 주체들은 동일한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비트코인 본위제 하에서는 정부도 화폐 정책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다. 개인들은 아무런 차별이나 외부 통제 없이 규칙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비트코인 본위 화폐를 선택하고 장기적으로 가치가 우상향하는 화폐를 장기 저축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실익이 돌아갈 것이다. 특히 높은 인플레이션율과 재정 압박, 혹은 경제적 고립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구가 수십 억에 달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비해 더 폐쇄, 고립되어 있으며, 폭압적이고, 폭력을 통한 분배 정의의 실현을 꾀하는 권위주의적 정권에서는 이러한 변혁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관점에서 이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다. 사회 운동만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던 개혁이 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다극화는 불가피한 일이다. 당분간은 그 어떤 단일 국가도 20세기 말 미국이 가졌던 만큼의 영향력을 독점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얼마간은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중국, EU, 러시아, 인도 등의 국가들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며, 오일 달러 체제와 오일 달러 체제 유지에 뒤따르는 비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것이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고, 독재자와 화석 연료에 의존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는 엘리트가 아니라 시민에 의해 작동하는 중립적인 비트코인 본위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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