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분열과 함께 사는 법

우리는 정치, 기술, 사회의 체계가 불일치를 빨리 해결하라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는 시대를 산다. 결정은 빨라야 하고, 갈등은 풀어야 할 문제로 규정되며, 모호함은 비효율로 취급된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가장 끈질긴 분열 상당수는 해결에 반응하지 않는다.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졌는데도 정치적 양극화는 심해진다. 연결이 늘어나는데도 문화 갈등은 굳어진다. 합의를 강제하려는 시도는 없애려던 바로 그 분열을 오히려 강화하기 일쑤다.

여기서 다른 질문이 나온다. 문제는 사회가 분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분열이 안정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사회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현대의 거버넌스(통치와 운영의 방식)와 기술 대부분은 한 가지 암묵적인 가정 위에 서 있다. 불일치란 결국 한 점으로 수렴하는 체계 안에서 잠시 벗어난 상태라는 가정이다. 이 관점에서 분열은 언젠가 합의로 무너져 내려야 한다. 속도는 진보로, 결단력은 성숙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역사는 어떤 분열은 세대를 넘어 지속된다고 말한다. 그런 분열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가 된다.

그럴 때 물어야 할 질문은 더 이상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것이 풀리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계속 작동할 것인가. 정책의 틀이나 기술 설계에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이 질문이야말로 체계가 시간이 지나며 무너질지 적응할지를 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떤 사회와 제도와 체계는 근본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작동해 왔다.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함께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신 지속되는 모순 아래서 기능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런 환경에서 생겨나는 것은 조화나 종합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능력이다. 최종 합의 없이도 결정하고, 조율하고, 의미를 만드는 일을 이어 가는 능력. 이 능력이 원칙으로 명시되는 일은 드물다. 이상이라기보다 필요에 의해, 암묵적으로 발달하는 편이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에서 분열은 설계의 실패로 취급된다. 흔한 대응은 최적화다. 더 많은 규칙, 더 나은 유인, 개선된 알고리즘. 그러나 최적화는 안정된 목표를 전제한다. 목표 자체가 다투어지고, 역사적으로 겹겹이 쌓여 있고, 구조적으로 갈라져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환경에서 공격적인 최적화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체계는 과녁을 지나치고, 제도는 굳어지며, 기술은 일관성 대신 양극화를 증폭한다. 빠진 것은 지능이나 통제가 아니다. 섣부른 해결 없이도 기능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런 사고는 정치를 넘어 복잡한 체계를 설계하는 방식 자체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에서 정렬(alignment, AI를 사람의 의도와 어긋나지 않게 맞추는 일)은 흔히 하나의 안정된 표상으로 수렴하는 일로 규정된다. 실제로 복잡한 체계는 깔끔하게 수렴하는 법이 거의 없다. 진동하고, 적응하고, 실패의 기억을 간직한다. 사회 체계에서 신뢰는 흔히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로 취급된다. 실제로 신뢰는 풀리지 않은 위험에 거듭 노출되면서 쌓인다.

두 경우 모두 안정은 불일치를 없애는 데서 오지 않는다. 불일치를 무너지지 않고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서 온다. 회복력은 긴장을 해결하는 데보다, 긴장이 지속되는 동안 기능을 유지하는 데 더 달려 있을지 모른다.

많은 사회가 더 빨리 결정하고, 더 크게 말하고, 더 날카롭게 갈라서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지금, 종결에 기대지 않는 안정의 형태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미래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이들의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해결이 불가능할 때 계속 생각하는 법을 배운 이들의 것일지 모른다.

영문 원문은 2025년 12월 18일에 썼다. 2026년 10월에 AI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로 옮겼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