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접힌 종이

식탁 위의 줄

식탁 위에 손가락으로 줄을 하나 긋는다. 가운데에 남한을 놓는다. 왼쪽에 북한, 오른쪽에 일본. 북한 너머에 중국, 일본 너머에 미국. 이렇게 다섯을 한 줄로 세우면, 익숙하던 지도가 조금 낯설어진다.

남한을 가운데 두면 북한과 일본이 같은 자리에 선다중국북한남한일본미국종북이라는 비난친일이라는 비난안쪽 고리: 상처 난 역사를 나눈 바로 옆 이웃바깥 고리바깥 고리
그림 1 · 남한을 가운데 둔 다섯 나라의 줄

우리가 배운 지도는 두 진영의 지도다. 한미일이 한 편, 북중러가 한 편. 휴전선은 두 진영이 맞닿은 경계이고, 남한은 한쪽 진영의 맨 앞 끝자락에 서 있다. 이 지도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어느 편에, 얼마나 붙을 것인가.

줄 위의 지도는 다르다. 남한이 가운데에 있다. 휴전선과 대한해협이 같은 종류의 선이 된다. 둘 다 진영의 경계가 아니라, 한 권역 안쪽에서 이웃과 맞닿은 선이다. 중국과 미국은 바깥 고리로 물러나 이 권역을 둘러싼 큰 이웃이 된다.

그 순간 북한과 일본이 같은 자리에 선다. 둘 다 우리와 상처 난 역사를 나눈 바로 옆 이웃이고, 둘 다 뒤에 큰 후원자를 두고 있다. 구조가 거울처럼 같다.

그러면 우리 안의 오래된 두 욕설도 거울이 된다. 한쪽은 상대를 친일이라 부르고, 다른 쪽은 상대를 종북이라 부른다. 내용은 정반대 같지만 이 줄 위에서는 같은 몸짓이다. 둘 다 “너는 우리 권역 안의 이웃 한쪽으로 기울었다”는 비난이고, 둘 다 가운데에 서는 대신 한쪽을 골랐다는 지적이다.

고리

줄을 양쪽으로 계속 늘려 본다.

북한 너머 중국, 그 너머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면 유럽에 닿는다. 일본 너머 미국, 그 너머 대서양을 건너도 유럽에 닿는다. 직선이라 생각했던 줄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고리였고, 두 길은 유럽에서 만난다.

유럽에서 출발한 두 팔이 한반도에서 맞부딪혔다유럽근대가 출발한 곳독일 · 유럽 쪽 가해국이스라엘 · 유럽의 문지방러시아 · 중앙아시아대서양중국미국북한일본남한두 팔이 만난 자국대륙의 길바다의 길
그림 2 · 줄을 늘리면 고리가 된다

그제야 한반도를 갈라놓은 두 힘이 어디서 왔는지 보인다. 대륙 쪽에서 내려온 소련과 사회주의도, 바다 쪽에서 건너온 미국과 자유주의도 뿌리는 유럽 근대다. 유럽에서 출발한 두 팔이 지구를 반대 방향으로 돌아 한반도에서 맞부딪혔다. 분단은 그 두 팔이 만난 자국이다.

고리의 뒤쪽 끝, 유럽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맞닿는 문지방에 이스라엘이 있다. 앞쪽 끝에 남한이 있다. 이스라엘 곁에는 유럽 쪽 가해국 독일이, 남한 곁에는 아시아 쪽 가해국 일본이 선다. 고리의 양 끝이 같은 구조를 반복한다.

네 칸의 표

네 나라를 두 가지 물음으로 네 칸에 넣어 본다. 전쟁을 일으킨 쪽인가, 당한 쪽인가. 그 뒤에 갈라졌는가, 갈라지지 않았는가.

유럽에서는 가해국 칸에, 아시아에서는 피해국 칸에 갈라짐이 찍혔다갈라졌다갈라지지 않았다가해국피해국독일동서독 1949, 통일 1990일본1945년 8월 홋카이도 분할 요구, 거절됨한국38선 1945, 두 정부 1948이스라엘건국 1948, 정전선 위의 나라유럽의 짝 독일·이스라엘도, 아시아의 짝 일본·한국도 대각선으로 마주 본다
그림 3 · 네 칸의 표

이 표는 해석이 아니다. 누구나 아는 사실 네 개를 칸에 넣었을 뿐이다. 그런데 넣고 나면 한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유럽에서는 갈라짐이 가해국 칸에 찍혔고, 아시아에서는 피해국 칸에 찍혔다.

종이를 접어 물감을 찍는 데칼코마니처럼, 유럽의 그림을 아시아에 찍었더니 “갈라짐”이라는 물감만 반대쪽 칸으로 번졌다.

1945년 9월 9일, 서울 조선총독부 앞의 두 장면
1945년 9월 9일, 서울 조선총독부. 일장기가 내려가고(왼쪽) 성조기가 올라갔다(오른쪽). 38선 남쪽의 일본군 항복은 미군이 받았다.
(미 해군 사진,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이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일이 아니었다. 1945년 8월 10일 밤, 미국 실무자 둘이 30분 만에 38선을 골랐다. 일본군의 항복을 미국과 소련이 나눠 받기 위한 선이었다. 그러니까 38선은 처음부터 일본 항복의 선이었다. 같은 달 16일, 스탈린은 트루먼에게 홋카이도 북쪽 절반을 소련이 점령하겠다고 요구했다. 트루먼은 거절했다. 일본이 독일처럼 갈라질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고, 그 칼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의 옛 식민지 위에 떨어졌다.

그어진 선과 그어질 뻔한 선38선 · 1945년 8월 10일 밤 그어짐↑ 소련군이 항복을 받는 쪽↓ 미군이 항복을 받는 쪽루모이구시로스탈린이 요구한 선 · 8월 16일트루먼이 거절해 그어지지 않았다만주소련일본동해황해태평양
그림 4 · 그어진 선과 그어질 뻔한 선
(지도 바탕: Natural Earth)

대만도 그렇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땅이었던 섬이 1949년 이후 중국이 갈라지는 무대가 됐다. 동아시아의 두 분단, 남북과 양안이 모두 무너진 일본 제국의 옛 땅 위에 있다.

두 번 접기

표를 두 방향으로 접어 본다.

가로로 접으면, 그러니까 가해냐 피해냐로 접으면 한국은 이스라엘 위에 포개진다.

이스라엘한국
운명이 정해진 회의유엔총회 결의 181호, 1947년 11월 29일유엔총회 결의 112호, 1947년 11월 14일 (같은 총회, 보름 차이)
건국1948년 5월 14일1948년 8월 15일 (석 달 차이)
사는 선1949년 정전선(그린라인)1953년 휴전선
가해국과 돈1952년 룩셈부르크 배상 협정1965년 청구권 협정
거리의 분노1952년 1월, 배상 반대 시위대가 국회에 돌을 던짐1964년 6월, 6·3 시위에 서울 계엄
그 시위에 섰던 사람베긴, 1977년 총리이명박(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 2008년 대통령
가해국과 수교서독과 1965년 5월 12일일본과 1965년 6월 22일 (6주 차이)

표 1 · 가로로 접으면: 이스라엘과 한국

세로로 접으면, 갈라졌느냐 아니냐로 접으면 한국은 독일 위에 포개진다.

독일한국
갈라진 방향동과 서남과 북
건너는 문체크포인트 찰리 (외국인·연합군·외교관만)판문점
손 내민 정책브란트의 동방정책김대중의 햇볕정책
유엔 동시 가입1973년 9월 18일1991년 9월 17일 (18년 사이, 하루 차이)
통일1990년 10월 3일아직

표 2 · 세로로 접으면: 독일과 한국

한국은 두 접는 선이 교차하는 칸에 있다. 피해자의 자리에 서서 가해자의 운명을 진 나라. 이스라엘의 자리와 독일의 운명을 한 몸에 지고 있다.

한 뿌리

왜 물감이 그쪽으로 번졌을까.

독일은 한 민족이 둘로 갈라졌다. 가해자의 몸이 갈라진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보려면, 일본과 한반도를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큰 몸으로 보아야 한다. 야요이 시대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 백제와 가야에서 바다를 건넌 도래인들, 그리고 2001년 아키히토 일왕이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는 『속일본기』의 기록을 들며 한국에 친연을 느낀다고 말한 일. 이런 것들을 모으면, 전쟁을 일으킨 큰 몸이 갈라지긴 했는데 칼이 일본 쪽 가지가 아니라 식민지가 된 가지에 떨어졌다는 그림이 된다.

이 ‘한 뿌리’의 그림은 일본이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때 쓴 일선동조론과 겉모습이 같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의 제국 질서 안에 묶였던 두 가지라는 구조다.

유럽 쪽은 얽힌 모양이 다르다. 독일인과 유대인은 한 뿌리가 아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천 년 넘게 독일 땅 안에 살았다. 중세 히브리어에서 아슈케나즈는 독일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유럽 유대인의 말 이디시어는 독일어에서 나왔다.

유럽아시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피해자가 가해자의 몸 안에 살았다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제국 질서의 두 가지였다
폭력의 모양안에 사는 사람들을 지우려 했다 (홀로코스트)다른 가지를 제 몸에 붙이려 했다 (창씨개명, 내선일체, 조선어 금지)
갈라짐이 떨어진 곳가해자의 몸같은 질서의 다른 가지

표 3 · 지우는 폭력과 삼키는 폭력

지우려는 폭력과 삼키려는 폭력. 이것도 데칼코마니의 한 짝이다.

접힌 자국

이제 처음의 두 욕설로 돌아간다.

남북 분단이 첫 번째 갈라짐이라면, 남한 안에서 서로를 친일과 종북으로 부르는 싸움은 그 분단이 안으로 접혀 들어온 두 번째 갈라짐이다.

남북의 분단이 남한 안으로 접혀 친일과 종북의 싸움이 됐다첫 번째 갈라짐: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북한남한38선, 일본 항복을 나눠 받은 선같은 선이 남한 안으로 접힌다두 번째 갈라짐: 남한 안이 두 비난으로"종북"이라 불리는 쪽북한에 대한 태도로 재판받는다"친일"이라 불리는 쪽일본에 대한 태도로 재판받는다두 비난은 두 개의 싸움이 아니라 한 분단의 양면이다
그림 5 · 두 번 접힌 자국

나라 안의 갈라짐이 하필 일본과 북한이라는 두 축을 따라 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 제국이 무너지며 생긴 분단이 일본이 아닌 한국 위에 떨어졌고, 그 분단이 다시 한국 사회 안으로 접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한 태도와 북한에 대한 태도로 나라 안이 쪼개지는 것 자체가, 일본이 지지 않은 분단을 한국이 대신 진 흔적이다.

우리는 이 두 싸움을 오래 따로 다뤄 왔다. 친일 문제는 해방 뒤 청산에 실패한 숙제로, 북한 문제는 분단체제라는 숙제로. 그러나 네 칸의 표 위에서 보면 둘은 한 분단의 양면이다. 두 개의 전선이 아니라 하나의 접힌 자국이다.

브란트의 하루

독일에서는 이 두 일이 한 사람 안에 있었다.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는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같은 날 그는 폴란드와 조약을 맺어 동쪽 국경을 인정했다. 과거를 마주하는 일과 갈라진 반쪽에게 손을 내미는 일, 징비와 통일이 같은 사람의 같은 하루 안에서 함께 갔다. 20년 뒤 독일은 하나가 됐다. 그 브란트가 1980년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살리라고 전두환에게 편지를 쓴 사람이었다는 것도 적어 둔다.

아시아에서는 이 두 일이 서로 다른 나라에 떨어졌다.

독일아시아
징비의 몫 (과거를 마주하는 일)독일일본
통일의 몫 (갈라진 반쪽에 손 내미는 일)독일한국
두 일을 진 몸한 몸두 몸
무릎을 꿇은 사람브란트, 1970년, 현직 총리로서 나라를 대표해하토야마, 2015년 서대문형무소, 전직 총리로서 개인 자격으로

표 4 · 징비의 몫과 통일의 몫

징비의 몫은 일본에 있는데 일본은 갈라지지 않았다. 분단의 몫은 한국이 졌는데 한국은 가해자가 아니다. 독일처럼 한 몸 안에서 둘이 함께 굴러갈 수가 없는 구조다.

세계체제와 분단체제

이 그림에는 이미 이름이 붙은 것들이 있다.

월러스틴은 16세기 유럽에서 출발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지구 전체를 하나의 체제로 엮었다고 보고, 그것을 세계체제라 불렀다. 앞에서 본 고리가 바로 그 체제다. 유럽 근대의 두 팔이 대륙과 바다로 갈라져 지구를 돌아 한반도에서 만났다는 그림은, 세계체제가 제 끝단에서 제 몸과 맞부딪힌 장면이다.

백낙청은 그 월러스틴을 끌어와 한반도의 분단을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 놓았다. 분단은 두 국가가 나뉜 상태가 아니라, 남과 북 두 사회를 관통하며 양쪽의 기득권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제 몸을 재생산하는 하나의 체제라는 것. 그게 분단체제론이다. 네 칸의 표에서 갈라짐의 물감이 찍힌 칸이 바로 이 체제가 놓인 자리고, 접힌 자국은 그 체제가 남한 사회 안에서 제 몸을 재생산하는 모양이다.

세계체제 안에 분단체제가, 분단체제 안에 남남갈등이 접혀 있다세계체제유럽 근대에서 출발해 지구를 도는 고리 · 월러스틴그림 2분단체제두 팔이 만난 자국이 하나의 체제가 된 것 · 백낙청그림 3의 왼쪽 칸남남갈등분단이 남한 안으로 접힌 자국 · 친일과 종북그림 5바깥 고리를 바꾸지 않고는 안쪽 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림 6 · 세 겹의 체제

세 겹을 포개면 오늘의 그림이 두 이론 위에 어디를 보태는지가 보인다.

하나는 비교다. 분단체제론은 한반도를 설명했고, 독일과는 자주 견주었다. 네 칸의 표는 거기에 이스라엘과 일본을 붙여, 세계체제가 같은 시기에 낳은 두 분단이 왜 한 번은 가해국 위에, 한 번은 피해국 위에 떨어졌는지를 묻게 한다.

다른 하나는 친일이다. 분단체제론은 남남갈등을 북한을 둘러싼 싸움으로 봤다. 접힌 자국은 그 싸움의 다른 한쪽 날이 일본을 향해 있다고 말한다. 친일 논쟁도 분단체제가 제 몸을 재생산하는 방식의 하나라는 것.

그리고 이 창에서 보면 백낙청이 변혁적 중도라 불렀던 것이 무엇인지도 다시 보인다. 친일이냐 종북이냐는 평면 위의 중간을 고르는 게 아니라, 그 평면을 만드는 체제 자체를 바꾸려는 자리. 그건 2에서 3으로 가는 일이다.

혈자리

체제는 크고 넓지만, 그 모순이 한꺼번에 응축되는 작은 자리들이 있다. 백영서는 그것을 핵심현장이라 불렀다. 오키나와가 그런 곳이다. 나는 여기에 금문과 개성, 그리고 안동을 더해 본다. 다섯 나라의 줄, 지구를 도는 고리, 네 칸의 표가 다 이런 곳에 접혀 들어 있다. 홀로그램의 조각처럼, 작은 조각 하나가 전체를 담고 있다.

아시아의 혈자리와 유럽의 짝아시아유럽오키나와가해국 안의 변방베를린가해국 안의 수도금문 · 샤먼눈에 보이는 거리의 두 물가서베를린상대 진영 한복판의 섬개성경계 위의 공단, 2004–2016에레즈경계 위의 공단, 2004년 폐쇄안동유교와 무교, 양반과 서민바이마르괴테와 부헨발트한 점에 체제 전체의 모순이 모인다. 고리의 양 끝에서 같은 모양으로
그림 7 · 아시아의 혈자리와 유럽의 짝

오키나와와 베를린. 오키나와는 가해국 안의 피해 변방이다. 1879년 병합된 류큐는 1945년 본토를 지키는 방패가 되었고, 1972년까지 미군의 점령 아래 있었으며, 지금도 주일미군 기지의 대부분을 안고 있다. 베를린은 가해국 안에서 점령군이 갈라놓은 도시다. 다만 베를린은 수도였고 오키나와는 변방이라, 중심과 변방의 자리가 반대다.

금문과 서베를린. 금문과 샤먼은 바다 건너 서로 눈에 보이는 두 물가다. 포탄이 오가던 바다 위로 등려군의 노래가 건너갔고, 2001년 소삼통으로 배가 가장 먼저 다닌 곳도 여기다. 서베를린은 상대 진영 한복판에 박힌 섬이었다. 공중 보급으로 버텼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장벽을 넘어갔다. 넷 가운데 가장 가까운 짝이다.

개성과 에레즈. 개성은 옛 수도이자 휴전선 바로 위의 도시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남의 자본과 북의 노동이 한 공단에서 만났다. 가자 경계의 에레즈 산업지구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동 공단이었지만 2004년에 닫혔다. 독일에는 내독 국경 위에 공동 공단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비대칭이다.

안동과 바이마르. 가장 보수적인 유교의 고장이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내었다. 임진왜란의 『징비록』과 만주로 간 혁신유림이 한 고장에 있다. 하회에서는 유교와 무교가 만나고 양반과 서민이 만난다. 서원과 종가 곁에서 마을 사람들은 서낭신을 모시는 별신굿을 열고, 탈을 쓰고 양반을 웃음거리로 삼았다. 도청 앞에는 2024년 박정희 동상이 섰고 그 맞은편 자리는 비어 있는데, 김대중의 평생 동지 권노갑과 이재명 대통령이 이 고장에서 태어났다. 가해와 피해, 보수와 저항, 동과 서가 한 고장에 접혀 있다. 바이마르는 괴테의 도시이면서 곁에 부헨발트 수용소가 있고, 독일 첫 민주 헌법이 여기서 나왔으며, 동독 땅이었다. 문화의 정점과 폭력의 바닥이 한 고장에 있다.

이 자리들은 혈자리와 비슷하다. 몸 전체의 병이 그 한 점에 모이고, 그 점을 누르면 몸 전체가 움직인다. 금문에서 배가 뜨자 양안이 열렸고, 개성에 공단이 서자 남북이 열렸다가 닫혔다. 다만 혈자리는 누른다고 다 낫는 것이 아니다. 오키나와의 기지는 지금도 그대로고, 에레즈는 닫혔다. 혈자리는 가능성의 자리지 보증의 자리가 아니다.

予其懲

여기서 서애의 책 첫머리를 다시 읽는다.

『징비록』이라는 제목은 『시경』의 한 구절에서 왔다.

予其懲而毖後患

내가 지난 일을 징계하여 뒤의 근심을 삼간다. 이 문장의 주어는 여(予), 나다. 적을 벌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를 돌아보겠다는 말이다. 전쟁에서 이긴 쪽도 진 쪽도 아닌, 당한 쪽의 재상이 자기를 주어로 세워 쓴 책이다.

피해자의 자리에서 가해자의 운명을 진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주어 안에 있다. 독일은 가해자로서 징비와 통일을 했다. 한국은 피해자로서 그 둘을 다 해야 하는 첫 나라일지 모른다. 피해의 기억을 이스라엘처럼 모으고, 그 기억을 독일처럼 책임과 화해로 바꾸는 일을 한 나라가 한 몸 안에서 해내는 것.

그러려면 징비는 남에게만 향할 수 없다. 1968년 2월 베트남 퐁니와 퐁넛에서 한국군이 민간인 74명을 죽였고, 2023년과 2025년 한국 법원이 두 번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으며, 정부는 대법원에 상고해 지금도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피해의 역사를 가진 나라도 다른 자리에서는 아픔을 남긴다. 그 아픔까지 주어 안에 넣을 수 있을 때, 여(予)라는 글자가 비로소 제 무게를 갖는다.

종이의 끝

친일이냐 종북이냐는 같은 평면 위의 두 선택지다. 그 평면에서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어느 쪽을 골라도 반대쪽이 남고, 이긴 쪽은 다음 선거에서 진 쪽이 된다.

네 칸의 표가 보여 주는 것은 그 평면에서 한 칸 위로 올라서는 자리다. 한국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자리가 아니라, 두 대칭이 교차하는 자리에 이미 서 있다. 가운데서 무엇을 이을 것인가. 그 물음이 열리는 순간 선택지가 달라진다. 일본과 북한이 직접 마주 앉지 못하는 일을 둘 다와 맞닿은 나라가 잇는 일. 바다 건너로 나간 입양인과 동포가 돌아오는 길을 여는 일. 흩어진 시민의 기억을 한곳에 모으는 일. 모두 같은 자리에서 나오는 일들이다.

강이 마을을 한 바퀴 도는 하회마을 항공 사진
강이 마을을 돌아 나가는 하회(河回). 접힌 자국이 교차하는 자리.
(사진: Korea.net / 해외문화홍보원, CC BY-SA 2.0, 위키미디어 공용)

식탁 위의 줄로 돌아간다. 가운데에 남한, 왼쪽에 북한, 오른쪽에 일본. 그 줄을 늘리면 고리가 되고, 고리의 반대편 끝에 이스라엘과 독일이 있다. 종이는 두 번 접혔고, 접힌 자국이 교차하는 자리에 우리가 산다. 그 자리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두 그림이 겹쳐 찍힌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덧붙임

이 글의 날짜와 숫자는 2026년 10월 17일 기준으로 확인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한 제국 질서의 두 가지로 보는 대목, 유럽과 아시아의 폭력을 지움과 삼킴으로 대비한 대목, 핵심현장의 유럽 쪽 짝을 고른 대목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필자의 독법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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