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상(脫喪)

탈상(脫喪)이라는 오래된 예(禮)로 한국과 세계의 정치를 읽는다. 상복을 벗지 못한 나라들이 기억을 버리지 않고 산 사람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 관하여.

1904년 무렵 서울, 상복 차림의 두 사람. 상주는 밖에 나갈 때 상복 위에 긴 겉옷을 걸쳤다.
(사진: 코넬대학교 도서관, 윌러드 스트레이트 컬렉션. 알려진 저작권 제한 없음)

상복을 벗는 날

탈상은 상복을 벗는 일이다. 전통 상례에서 부모를 잃은 사람은 일정한 기간 상중으로 지냈다. 베옷을 입고, 잔치를 삼가고, 일상의 많은 일을 뒤로 물렸다. 그러다 정해진 때가 오면 상복을 벗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탈상은 잊는 일이 아니다. 탈상 뒤에도 제사는 해마다 이어진다. 죽은 이를 잊어서 상복을 벗는 게 아니라, 산 사람이 살아갈 자리로 돌아오기 위해 벗는 것이다. 죽은 이는 제사의 자리로 가고, 산 이는 일상의 자리로 간다. 예(禮)는 슬픔을 위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이 일상으로 돌아갈 길도 마련했다.

상복은 생각이 아니라 옷이다. 몸에 걸치는 것이고, 몸에서 벗는 것이다. 예가 상의 끝을 마음이 아니라 옷으로 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음은 날짜를 모르지만 몸은 날짜를 안다.

그런데 상주가 상복을 벗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죽음이 억울할 때, 죽인 자가 아직 저 앞에 있을 때, 상복을 벗는 것이 배신처럼 느껴질 때. 그런 상주는 상복을 입은 채 세상에 나간다. 상복은 옷이 아니라 정체성이 되고, 상은 기간이 아니라 평생이 된다.

정치에도 이런 시간이 있다. 오래전의 죽음이 오늘의 편을 가르고,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사람이 그 죽음의 싸움을 물려받는 시간.

이 글은 상복을 벗지 못한 나라에 관한 글이다. 먼저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만일까? 오래된 내전의 깃발과 동상을 두고 아직 다투는 나라. 독재 시절의 무덤을 열지 말지로 갈라진 나라. 백 년 전의 죽음을 두고 이웃과 말을 끊은 나라. 상복을 입은 채 투표장에 가는 시민은 어디에나 있다. 탈상은 그 정치를 읽는 하나의 독법(讀法)이다.

끝나지 않는 상

한국 정치에는 두 개의 상가가 있는 듯하다.

한쪽에는 공포의 기억이 있다. 전쟁과 피난, 가난, 북에서 내려온 날의 기억. 그 기억을 물려받은 사람에게 상대는 그 공포를 모르는 사람, 혹은 그 공포를 다시 불러올 사람으로 보인다.

다른 한쪽에는 억울함의 기억이 있다. 고문과 해직, 광주, 돌아오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의 기억. 그 기억을 물려받은 사람에게 상대는 억울함을 만든 사람, 혹은 그 책임을 부정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두 상가는 서로의 죽은 이를 애도하기 어렵다. 한쪽의 상복이 다른 쪽에는 도발로 보인다. 저들의 슬픔을 인정하면 우리 죽음의 정당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삶은 이 구분보다 복잡하다. 피난 온 사람이 독재에 저항했고, 산업화를 자랑하는 가족이 국가폭력으로 자식을 잃었다. 한 사람 안에도 공포와 억울함은 함께 있다. 두 상가는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이면서, 한 사람 안에 갈라져 있는 두 방이기도 하다.

정치는 그 겹침을 지우고 어느 쪽 사람인지를 묻는다. 무엇을 겪었는지 듣기 전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부터 정하게 한다. 그러면 한 사람의 삶에서 자기 편에 쓸 수 있는 기억만 남는다.

이렇게 물려받은 상은 패배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승리 뒤에도 계속된다. 12·3 비상계엄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킨 뒤에도, 자기 편 안에서 새로운 적을 찾아내는 정치는 끝나지 않았다. 의견의 차이는 배신이 되고, 경쟁자는 진압해야 할 세력이 된다.

물론 거친 말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행위에는 그에 맞는 이름과 책임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행위를 판단하는 말이 일상의 모든 이견을 재단하는 말이 될 때다. 그때 승리는 싸움을 끝내지 못한다. 다음 싸움의 자리를 옮길 뿐이다.

같은 평면

왜 싸움이 끝나지 않나. 두 상가가 같은 평면 위에 있기 때문이다.

승과 패는 한 평면 위의 두 끝이다. 한쪽이 이기면 다른 쪽이 지고, 진 쪽은 상복을 입고 다음 싸움을 준비한다. 이긴 쪽은 승리를 지키기 위해 계속 적을 확인한다. 상복을 벗는 순간 상대가 치고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 믿음이 종종 맞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사실을 빼놓으면 탈상은 위험을 모르는 사람의 권유가 된다. 싸움을 그만하라는 말만으로 실제 위협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상복을 벗은 사람이 다시 다치지 않을 조건이 있어야 한다.

승패의 평면 위에는 탈상이 없다공포의 상가이기면 상대를 진압억울함의 상가이기면 상대를 진압중간: 평면 위의 한 점이기고 지고 다시 이기고승과 패가 자리를 바꾸는 평면. 이긴 쪽은 다음에 지는 쪽3: 평면을 바꾸는 자리탈상은 여기서만 일어난다평면에서 한 칸 올라서는 축
그림 1 · 평면과 축

사람들은 이 평면 위에서 답을 찾는다. 더 세게 이기자, 아예 끝장을 내자, 아니면 가운데서 만나자. 그런데 가운데도 평면 위의 한 점이다. 중간에 서는 것만으로는 싸움의 규칙이 바뀌지 않는다.

평면에서 한 칸 올라선다는 것은 싸움을 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이 서로를 끊임없이 적으로 필요하게 하는지 묻는 일이다. 누가 이기느냐와 함께, 이긴 뒤에도 왜 같은 싸움이 되풀이되는지를 보는 일이다.

앞의 글 「두 번 접힌 종이」에서는 그 평면을 만드는 큰 조건으로 분단을 보았다. 남과 북 사이의 경계가 남한 안으로 접혀 들어와, 이웃의 말과 기억을 적의 징후로 읽게 하는 방식. 그러나 분단이 모든 상처의 원인은 아니다. 국가폭력과 전쟁, 노동과 가난의 경험에는 각각 따져야 할 역사와 책임이 있다. 분단체제는 그 서로 다른 상처를 적대의 편 가르기 속에 묶어 재생산한다.

탈상은 그 연결을 끊는 일이다. 기억을 지우지 않으면서, 그 기억이 오늘의 모든 관계를 적과 동지로 나누게 두지 않는 일이다.

중간이 아닌 중도

백낙청의 변혁적 중도는 이 대목에서 함께 읽을 만하다. 중도를 양쪽의 중간쯤으로 이해하면, 기존의 양쪽이 만들어진 조건은 그대로 남는다. 변혁적 중도가 겨누는 것은 그 조건을 바꾸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2에서 3으로 가는 일로 읽는다. 두 입장 사이에 세 번째 입장을 하나 더 놓는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반대라고 여겼던 두 입장이 어떤 체제 안에서 함께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는 축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 축에서 보면 두 상가의 기억은 한 나라의 역사 안에 함께 놓인다. 함께 놓는다고 잘잘못이 같아지지는 않는다. 국가폭력을 행사한 책임과 그 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을 반반씩 나눌 수는 없다. 다만 책임을 묻는 일과 사람의 상실을 듣는 일을 구별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슬픔을 인정한다고 그 사람의 정치적 판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지지한 권력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삶을 들을 자리를 내어주는 것과 권한을 맡기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 구별이 있어야 서로의 기억을 들으면서도 판단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 축은 생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체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위협을 느끼면 적과 동지의 언어로 돌아간다. 그래서 탈상에는 돌아갈 자리가 필요하다. 말이 거칠어졌을 때 멈출 수 있는 절차, 의견이 달라도 쫓겨나지 않는 관계, 기억이 달라도 함께 지킬 수 있는 규칙. 의례는 그런 자리를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확인하는 한 방법이다. 의례가 생각과 다른 점은 몸으로 한다는 데 있다. 생각은 상가에서 흔들리지만, 날짜를 정해 옷을 벗는 몸은 덜 흔들린다.

누가 먼저 벗나

탈상은 여유가 있는 쪽에서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승리한 쪽, 권한을 가진 쪽, 상대적으로 안전한 쪽에 더 큰 몫이 있다.

그렇다고 이긴 사람에게 잃을 것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승리 뒤에도 위협은 남고, 어렵게 지킨 것을 다시 빼앗길 수 있다. 다만 공적 권한을 가진 쪽은 그 위험에 대응할 수단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 수단을 계속되는 동원에 쓸지, 동원하지 않아도 안전한 조건을 만드는 데 쓸지 선택할 수 있다.

진 쪽에게 먼저 상복을 벗으라고 요구하면 항복을 권하는 말이 되기 쉽다.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요구하면 침묵을 강요하는 말이 된다. 누구의 애도에도 바깥에서 종료일을 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전통 상례와 정치의 비유는 갈라진다. 나라에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날 상복을 벗으라고 명할 주례자가 없다.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의 기한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를 끝내지 않은 사람도 싸움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 조건에는 책임 추궁도 들어 있다. 조사와 재판, 배상과 재발 방지는 계속되어야 한다. 탈상은 면책도 망각도 아니다. 책임을 묻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할수록 사람은 자기 몸으로 끝없이 싸워야 한다는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래서 이긴 쪽이 할 말은 “우리가 이겼다”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소임을 다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 뒤에는 권한을 절제하고, 절차를 지키고, 자기 편의 잘못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이 말이 실물로 보인 아침이 있다. 2021년 5월, 새로 뽑힌 여당 대표가 첫 공식 일정으로 현충원에 갔다. 제 편의 죽은 이만이 아니라 네 전직 대통령의 묘역을 다 돌았고, 박정희 묘역의 방명록에는 “자주국방 공업입국”이라고 적었다. 상대의 상가에 제 발로 들어가 상대의 말로 절을 한 것이다. 그 당이 그 뒤에 어디로 갔는가는 다른 이야기이고, 동작 하나로 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다만 탈상이 어떤 몸짓인지는 그 아침에 보였다. 권한을 가진 쪽이 먼저, 상대의 죽은 이 앞에 몸을 굽히는 것.

서애 류성룡이 전쟁 뒤에 남긴 책의 이름은 『징비록』이다. 지난 일을 경계하고 뒤의 근심을 삼간다는 뜻이다. 그 제목의 바탕이 된 구절에는 여(予), 곧 ‘나’가 있다.

나를 주어로 세운다고 침략의 책임을 내가 떠안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내가 다음 일을 위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탈상의 문법이 여기에 있다. 상대가 바뀌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자리에서, 내가 맡아야 할 몫을 묻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제사는 계속된다

탈상 뒤에도 제사는 해마다 이어진다. 정치에서 그 제사에 해당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기록과 회고다. 누가 무엇을 겪었는지 각자의 목소리로 남기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가 다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일이다.

한국에도 전쟁과 국가폭력, 민주화와 산업화의 경험을 남겨온 기록들이 있다. 필요한 것은 그 작업을 존중하면서, 갈라져 있던 기억이 서로 만날 길을 더 여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면 정치적 구호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나온다. 그가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누구를 잃었는지. 그것을 안다고 그의 선택이 모두 옳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를 하나의 진영으로만 부를 수는 없게 된다.

이때 서로의 기억을 듣는 일은 같은 결론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건을 끝내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없애기 위해 상대의 삶까지 지우지 않는 것이다.

죽은 이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자리는 하나의 평가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 따져 묻고, 그 일로 누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함께 남긴다.

그 자리는 종이 위에만 있지 않다. 경북도청 앞에는 박정희 동상이 서 있고, 그 맞은편은 비어 있다. 한쪽의 죽은 이만 돌로 서 있는 땅이 이 나라에는 여럿 있다. 그 빈자리에 누구를 세울지, 세울지 말지는 그 땅의 사람들이 정할 일이다. 바깥에서 이름을 정해 들여보내면 그것은 제사가 아니라 깃발이다. 다만 빈자리가 빈자리라는 것은 보여야 한다. 제사는 거기서 시작한다.

제사는 싸움을 되풀이하기 위해 죽은 이를 부르는 일이 아니다. 죽은 이를 기억할 자리가 있으므로 산 사람이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말하고 들을 수 있는 자리

그러면 그 자리는 어떻게 만드는가. 답은 정책이 아니라 방법이다. 체제가 사람의 감정을 통해 제 몸을 재생산한다면, 체제를 바꾸는 일도 감정을 다루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회고에서 재경험과 애도를 거쳐야 탈상에 이른다회고제 말로 제 삶을 꺼낸다재경험몸으로 다시 지나간다애도싸우는 대신 슬퍼한다탈상상복을 벗고 자리로보호 장치: 듣는 사람의 지침 · 당사자 동의 · 상담 · 공적과 사적의 경계공적 저장소: 양쪽의 기억이 한 그릇에 쌓여 집단의 기억이 된다
그림 2 · 탈상의 네 단계와 두 바탕

시작은 회고다. 한 사람에게 자기 삶을 자기 말로 이야기할 시간을 내어주는 것. 정치적 견해부터 묻기 전에,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듣는 것이다.

회고가 곧 치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꺼낸 뒤 더 힘들어질 수도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있다. 누구도 자기 상처를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슬픔과 분노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고, 기억을 다시 겪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 몸의 문제가 있다. 이야기를 다 했는데도 여전히 아픈 사람이 많다. 말로 꺼낸 것과 몸이 통과한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복을 못 벗는 것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이고, 그래서 회고 뒤에는 재경험의 자리가 따로 있다. 그 이야기를 몸으로 다시 지나가는 자리다. 독일의 가족세우기를 정리한 헬링거는 가족에서 배제된 사람에게 자리를 돌려주면 얽힘이 풀린다고 보았다.1 입에 올리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뒷세대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떠안고, 그 사람을 방 안에 세워 자리를 돌려줄 때 체계가 풀린다는 관찰이다. 나도 이 작업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거기서 배운 한 가지를 가져온다. 자리를 돌려주는 일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 상대의 상가에 들어가 절을 하는 일, 비어 있던 자리에 의자를 하나 놓는 일, 날짜를 정해 상복을 벗는 일이 모두 몸의 일이다. 의례가 생각보다 센 까닭이 그것이다.

애도는 그 뒤에 온다. 몸으로 지나간 사람만 슬퍼할 수 있다. 상중의 사람은 슬퍼하는 게 아니라 싸우고 있다. 분노는 애도를 미루는 방식이고, 애도가 시작되면 상복을 벗을 날이 보인다. 탈상은 애도의 끝에 오는 의례다.

재경험은 이 방법의 가장 센 부분이자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잘못 열면 상처가 다시 터지고, 그러면 상복이 더 두꺼워진다. 그래서 듣는 자리에는 규칙이 있어야 한다. 말하지 않을 권리, 중단할 권리, 공개를 거부할 권리. 듣는 사람은 증언을 얻기 위해 그 경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길도 마련해야 한다. 안전은 이야기를 꺼낸 뒤 덧붙이는 배려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 자리를 성립시키는 조건이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남길지 정해야 한다. 녹음에 동의했다고 공개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연구를 위해 맡긴 기록이 정치적 선전에 쓰여서도 안 된다. 누가 보관하고, 누가 접근하며, 어디까지 인용할 수 있는지 당사자와 함께 정해야 한다.

그렇게 모인 기록을 공적으로 지킬 그릇이 필요하다. 공적이라는 말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나 공개한다는 뜻은 아니다. 공개하지 않는 기억까지 약속한 방식으로 보존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이 그릇의 운영도 어느 한쪽의 선의에만 맡길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과 기록을 맡긴 당사자가 운영을 살피고, 이의를 제기하고, 잘못된 사용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억의 저장소가 또 하나의 진영 창고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회고는 각자의 삶을 꺼내고, 경청은 서로의 기억이 들어올 자리를 만든다. 재경험은 그 기억을 몸으로 지나가게 하고, 기록은 그 만남이 그날의 감동으로 사라지지 않게 한다. 의례는 그 기억을 계속 돌보겠다는 약속을 몸으로 확인한다.

그 일이 한 번의 행사로 나라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싸워야만 내 기억이 살아남는다는 두려움을 조금씩 덜 수는 있다. 내가 매일 상복을 입고 서 있지 않아도, 내가 겪은 일과 잃은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탈상은 그 믿음 위에서 가능해진다.

한국의 이야기로 썼지만 이 질문은 국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누가 먼저 상복을 벗나? 벗은 뒤에 기억은 어디에 두나? 저쪽 상가에 조문을 갈 수 있나? 상복을 벗지 못한 나라라면 어디든 같은 질문 앞에 선다.

같은 평면에서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 있다. 그 싸움에서 돌아오는 길은 상대를 완전히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책임은 책임대로 묻고, 기억은 기억대로 지키며, 산 사람에게 살아갈 자리를 돌려주는 데 있다.

상복을 벗어도 기억은 버려지지 않는다.

제사는 계속된다.

덧붙임

이 글은 2026년 8월 27일에 쓴 같은 제목의 초고를 다시 쓴 것이다. 「두 번 접힌 종이」와 한 쌍이다. 그 글이 상가를 만든 평면이 무엇인지를 그린다면, 이 글은 그 평면에서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공포와 억울함이라는 두 기억의 틀은 앞서 쓴 정치 감정사 연작에서 가져왔다. 두 기억은 사람과 진영을 나누는 분류표가 아니다. 한 사람과 한 가족 안에서도 함께 이어지는 역사의 두 흐름을 가리킨다. 변혁적 중도를 2에서 3으로의 전환으로 읽은 대목은 필자의 해석이다.

현충원 참배는 2021년 5월 3일의 보도로 확인했다. 경북도청 앞 동상은 2024년 12월 5일 국민 성금으로 세워졌다.

Footnotes

  1. 가족세우기(Familienaufstellung)는 독일의 베르트 헬링거(1925~2019)가 1990년대에 정리한 집단 작업이다. 참가자 가운데 대리인을 세워 한 사람의 가족 체계를 방 안에 펼쳐 놓고, 자리를 옮기고 몇 마디 문장을 건네면서 얽힘이 풀리는지를 본다. 헬링거는 가족에서 배제되거나 잊힌 사람(일찍 죽은 아이, 쫓겨난 전처, 입에 올리지 않는 가해자)이 있으면 뒷세대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 떠안는다고 보았고, 그 사람에게 자리를 돌려줄 때 체계가 풀린다고 했다. 이 작업은 임상 현장의 관찰에서 나왔고, 효과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헬링거의 진행 방식도 독일 안에서 논쟁이 있었다. 이 글이 빌려 오는 것은 그의 이론 전체가 아니라 한 가지 관찰이다. 배제된 자리가 비어 있는 한 그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 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자리를 돌려주는 일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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